나의 기록/이것은 소설입니다

무제 - 3

공부할 것이 많구나 2022. 7. 19. 02:10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철없이 해맑고 친절한 아가씨의 배웅을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려 17호 빈소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기자랑 팬들이 벌써 왔나봐.” 재영이가 말한다.

빈소에 가까워지자 입이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장례식장에 오면 항상 그렇다.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악의를 갖고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인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되려 그런 악의를 갖고 장례식장까지 친히 찾는 이가 있다면 고인의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볼만하다. 그러므로 장례식장에서는저는 이렇게 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하고 남은 이들을 위해 꽤나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일이 있다. 돈으로, 시간으로 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순간도 많은 것이다. 빈소로 들어가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하작가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애도해야 하는 것일까. 수수께끼를 풀고 넘어가지 않으면 가끔 이렇게 발목을 잡곤 한다. 수학책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하는 원리와 같다. 처음에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개념은 나중에 꼭 발목을 잡아 페이지를 되돌아 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수학책과 같지 않다. 출판사 입사와 하작가의 죽음은 수학책 목차에 없었다. 부의금을 내고 방명록을 작성하면서 문상 절차를 머리 속에 정리한다. 지금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예의를 차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더 중하다면 수수께끼를 푸는 게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마음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건 이해해서 푸는 문제가 아니라, 외워서 푸는 문제란 말이다. 무오향절절, 무오향절절... 머리 속으로 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뗀다. 영정 사진 앞에 릎을 꿇고 앉아 른손으로 을 집는다. 왼손으로 오른 손을 받치고 향에 불을 붙인다. 향을 향로에 꽂고 영정에 을 한다. 마지막으로 상주와 맞을 한다. 무오향절절... 증명 성공이다.

...”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다. 다행히 실수는 없었다. 장례식장을 좀 더 다녀보면 이제 나도 이런 절차가 익숙해질까. 아니,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슬픔을 나누려 하는지부터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하작가라면 나처럼 하작가와 별로 친하지도 않던 사람이 와서 이곳에서 쭈뼛거리는 게 탐탁치 않을 것이다. 문득, 재영이는 이런 자리에 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조문을 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할까 궁금하다. 나처럼 무오향절절 하지는 않을테고 그냥 점점 익숙해진 것일까? 아니면 특유의 곰살맞음으로 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헤실헤실대는 사람은 덜 진지할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재영이는 사람을 사랑하지만 많이는 사랑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지. 때때로 재영이 같은 녀석은 이 각박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나, 생각이 들어도 이렇게 자기 방식대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그게 또 그런 사람의 매력이겠지.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무슨 재미...

이리로 오지조문을 마치고 재영이가 눈으로 회사 사람들을 찾자 곽부장님이 발견하고 부르셨다.
재영이가 가는 대로 따라가 회사 사람들과 함께 앉는다. 프로 정신이 투철해 보이는 믿음직한 아주머니 한 분께서 식사를 준비해 주신다. 잠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꽤나 오래 하신 느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일을 계속 하실 것만 같다. 왠지 저 아주머니는 자신의 장례식에 조금 더 색다른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싶지 않을까? 혹은 장례식장 도우미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 죽음으로 살아가는 이 아주머니의 무뚝뚝하고도 정확한 손길에 따라 각종 음식이 일회용기에 담겨 나온다. 편육을 비롯한 반찬과 육개장. 나는 편육을 보면 자연의 힘에 의해 켜켜이 쌓인 지층이 생각난다. 시간과 생명의 흔적인 지층 말이다. 돼지 머리 고기로 만든 이 편육이라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생명의 흔적이다. 적의 머리를 베어오라고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머리라는 것은 정체성이자 곧 생명이다. 편육을 만들 때는 돼지의 머리를 잘라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들과 눈과 털을 제거한 뒤 그것을 삶아서 갈아 버린 뒤에 다시 누른 채로 굳힌다. 돼지의 생명을 철저히 유린하고 겁탈하는 것만 같은 요리법이다. 식인 살인마가 자신의 원수를 죽여도 이렇게 까지는 요리할 것 같지가 않다. 이 불쌍한 돼지의 죽음은 누가 슬퍼해줄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는 하작가보다 돼지의 죽음을 더욱 애도한다. 나는 하작가는 잘은 모르지만, 돼지는 너무나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하작가의 죽음에는 슬퍼하지만 이 돼지의 죽음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 돼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은 편육을 먹지 말아야지, 하고 내일이 되면 돼지의 생명 따위는 모두 잊고 맛있게 먹겠다는 바보 같은 다짐을 해본다. 지층과는 다르게 충분한 시간도 없이하고 눌려버렸을 이 돼지의 머리를 비롯한 단출하고 평범한 차림을 보고 있으니 유명한 작가의 장례식도 내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별 다를 바 없구나 싶다.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아주 직접적인 원인을 하나만 뽑으라면, 굳이 폐렴을 뽑는 것이지 할아버지는 이미 죽음의 늪에 빠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치매와 당뇨를 앓고 계신 상태였다. 그의 죽음이 다가온 것을 느꼈을 때, 그의 죽음에 대비하며 온 가족이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죽음은 많은 일을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무척이나 죄스러웠다. 그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내가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못 본 척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병상에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보며 어린 나는 아주 혼란스러워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매우 평범했다. 날씨가 어둡거나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죽는다고 이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죽음 따위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라는 양 상조 회사가 절차와 예에 맞게 정해진 일들을 처리해준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꽤나 두려워졌다. 내가 죽어도 달라진 거라고는 상조 회사가 할 일이 하나 늘어난 것밖에는 없지 않을 게 아닌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하나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생명력은 다한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옷을 갈아입고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바빴다.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후회 없는 삶이었을까? 뒤늦게 나는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싶었다. 이전까지는 그런 질문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허탈한 것임을 깨닫고 나니 한번 여쭤보고 싶었다. 과연 당신께서는 삶의 어떤 순간에 울고 웃고 하셨느냐고. 방 한켠 가득 쌓여 있는 일회용품 박스에서 나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과 인간의 삶이 다를 게 무엇인가. 그날 나는 상주실에 누워 방 한켠에 있는 켜켜이 쌓인 일회용 접시의 냄새를 맡으며 이것이 죽음의 냄새인가보다, 하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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