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이것은 소설입니다 3

무제 - 3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철없이 해맑고 친절한 아가씨의 배웅을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려 17호 빈소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찰칵거리는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기자랑 팬들이 벌써 왔나봐.” 재영이가 말한다. 빈소에 가까워지자 입이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장례식장에 오면 항상 그렇다.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악의를 갖고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인물이 몇이나 되겠는가. 되려 그런 악의를 갖고 장례식장까지 친히 찾는 이가 있다면 고인의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 볼만하다. 그러므로 장례식장에서는 ‘저는 이렇게 도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고 남은 이들을 위해 꽤나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는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일이 있다. 돈으로, 시간으로 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

무제 - 2

조수석에 앉아 하 작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본다. 그런데 하 작가의 얼굴이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다. 꽤나 잘생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눈을 감고 떠올려본다. 하 작가가 어떻게 생겼더라. 가물가물하다. 언젠가 내가 좋아했던 후배가 내 곁을 스쳐지나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후배에게는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좋은 향기이지만 어떤 향기인지는 묘사하기 힘들다. 다만,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면 ‘아, 이 향기였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향기를 나는 맡았다. 후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를 지나쳐 갔고, 나는 그 아이의 걸음 걸음 옅어지는 향수 냄새를 맡으며 후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작가의 얼굴도 그렇다. 꼭 그 향기 같다. 잘 생긴... 잘 생긴 얼굴... 머리에 문득 안나 카레니나의 ..

무제 - 1

새벽부터 문자라니. 직장인의 단잠을 방해하면서까지 그렇게 전하고 싶은 소식이 무엇일까. 눈을 찌푸리며 간신히 읽어본다. 「 하윤기 작가 2018년 10월 11일 작고하셨습니다.」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것으로 월요일을 시작한다. 영 좋지 않다. 그나저나 하작가에게 병이 있었나? 아파 보이지는 않았는데. 또 문자가 온다. 아마 재영이겠지. 「소식 들었어? 같이 가자. 확인하면 전화 줘」 재영이는 학교 동기이지만 나보다 입사를 빨리 했다. 집이 가까워서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종종 같이 문상을 가곤 한다. 재영이에게 전화를 건다. “방금 문자 봤어.” “갈거지?” “가야지.” “그럼 같이 가. 이번엔 내 차로 가자. 바로 출발하자.” “바로? 너무 이른 것 같은데.” “하 작가님이니까 회사에서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