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기술/웹소설 쓰기 수업

과제 1: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

공부할 것이 많구나 2022. 8. 17. 00:46

나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까 생각해보며 제 삶을 돌아보니 저는 다소 모범생처럼 자라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는 대부분 청소년 권장 도서 100선에 있을 법한 책들입니다. 학창시절에 잠깐 짬이 나면 저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구석 자리에서 혼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펭귄 클래식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데미안>, <폭풍의 언덕>, <봄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자기 앞의 생> 같이 어디에서나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굵직한 책들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해서 특히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특징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세 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첫번째로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를 화자로 내세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지난 수업에서 ‘공주님 구하기와 악당’이라는 도식을 이용해 이야기를 재구성해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소설이란 용사가 이런 저런 역경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찬란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을 마침내 구해내는 혹은 애석하게도 구해내지 못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첫번째 유형의 소설에서 공주님이란 아마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구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용사는 타인을 구하러 간다고 혹은 다른 목적을 위한 여정을 떠난다고 생각하지만 종국에 가서 용사가 구한 것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그런 이야기를 저는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데미안>, <슬럼독 밀리어네어>, <라이프 오브 파이>, <밀회>가 이런 이야기에 해당됩니다. <데미안>의 제목은 데미안이지만 사실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과의 추억과 기억에 기대어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빈민가의 한 소년이 퀴즈쇼에 나와 퀴즈를 푸는 내용입니다. 퀴즈 하나 하나에는 소년의 삶 한 조각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소년이 모든 퀴즈를 풀고 퀴즈쇼에서 상금을 획득하는 것은 아마 상금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당성'을 마침내 찾은 것을 의미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소년의 이야기이고, 소년은 우여곡절 끝에 바다에서 살아남게 됩니다. 그 소년이 진정으로 얻은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이 세계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가치관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밀회>는 표면적으로는 오혜원과 이선재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밀회는 전적으로 오혜원이 스스로를 구원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혜원은 순수한 청년인 선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행복한 삶의 주체가 아닌 오로지 성공만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취급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윽고 오혜원은 용기를 내서 스스로 족쇄를 풀게 됩니다. 물리적으로는 오혜원이 감옥에 갇히고 말지만 오혜원의 영혼은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이 자신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간혹 그런 이야기 중에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지요. 이를테면 인간실격 같은 소설이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구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런 이야기는 제 영혼에 큰 울림을 줍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한 투쟁만큼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없으니까요.

두번째로 저는 아이를 화자로 내세운 소설을 좋아합니다. 이런 소설에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자기 앞의 생>, <사랑 손님과 어머니>, <치숙>과 같은 소설이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자기 자신 구하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한 인물이 성장해가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내밀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나 <자기 앞의 생>에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화자가 등장합니다. 그런 화자는 보통 어리지만 나이에 비해 무척 영민하고 예민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은 주어진 삶을 마냥 해맑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화자는 너무 영리하고 화자에게 주어진 삶은 지나치게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어른들이 주는 사탕에 만족하며 사탕을 빨아 먹고 있을 때 이 화자는 사탕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면서도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대가로 사탕은 충분한 것인지 고민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 고단함을 모든 신경으로 여실히 느끼는 어린 아이만큼 삶에 대해 마음껏 불만을 표하고 마음껏 의문을 드러낼 자격이 충분한 존재가 있을까요. 이런 소설 속에서 우리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각자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열렬히 찾게 됩니다. 어떻게든 우리의 귀엽고 영리한 주인공이 삶을 계속 살아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전개되면서 화자는 성장해가고 나름대로 자기 앞에 놓여진 삶을 살아내야 할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독자들 역시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질문을 마음 한켠에 아로새기게 됩니다.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 <치숙>처럼 순박한 아이의 시선으로만 전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잘못된 관념이나 잘못된 사회상을 은근히 꾸짖음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 재미를 보여줍니다. 혹은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아이의 입을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이야기의 애틋함이나 순수함이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순수함과 귀여움이 묻어나는 문체에 읽는 내내 제 마음이 산뜻하게 들뜨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고찰하는 것만큼 비인간적인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사랑에 마음이 설레고 잊었던 추억들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생각해보자면, 사랑은 참으로 다양한 감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마치 코스 요리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다른 명작이 정갈한 식사라면 사랑 이야기는 제게는 조금 유치해도 풍부한 코스요리 같은 것입니다. <폭풍의 언덕>을 생각해보자면 그 이야기에는 증오, 애정, 질투, 배신, 절망, 환희 등 다양한 감정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소설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폭풍치는 사랑 이야기만이 줄 수 있는 그 자극적인 매력에 빠져들어 책을 놓기 어렵습니다. 두번째로 제가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빌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시에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사랑은 두 세계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다보면 사랑의 대상인 상대방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됩니다. 다른 세계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세계의 경계를 알기 힘든 법이니까요. 그래서 사랑을 하다보면 사랑의 걸림돌이 의외로 외부의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것임을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은 그런 사랑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자신의 마음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 구하기’와 비슷하게 이런 종류의 사랑 소설은 사랑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성장하고 달라지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자기 자신을 구함과 동시에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에서 자아의 확립 또는 성장은 사랑을 위한 필요조건에 해당합니다.

정리해보자면, 저는 주로 주인공의 내면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런 책에는 주인공의 성장을 도와주는 주변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큰 역경을 맞이하거나 방황을 하기도 하지요. 이런 이야기 외에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나 아이를 화자로 등장시켜 순진한 화법이 매력적인 소설을 좋아합니다. 나이가 들고 나면 그때는 다른 이야기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약간 그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잘 보지 않았던 판타지 영화를 지금은 즐겨보곤 하니까요. 이런 취향의 변화는 어쩌면 제 자아가 어느 정도는 확립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다시 인간은 필연적으로 역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 구하기’ 이야기는 그래도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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